맨위로가기

존 메이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존 메이올은 영국의 블루스 음악가로, 1933년 11월 29일에 태어나 2024년 7월 22일에 사망했다. 그는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를 결성하여 에릭 클랩튼, 피터 그린, 믹 테일러 등 많은 유명 기타리스트들을 배출하며 '영국 블루스의 대부'로 불렸다. 2005년 대영 제국 훈장(OBE)을 수훈했으며, 2024년에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잉글랜드의 블루스 기타 연주자 - 조지 해리슨
    영국의 록 음악가이자 비틀즈의 리드 기타리스트였던 조지 해리슨은 "조용한 비틀"로 불리며 "Something"과 같은 곡들을 작곡했고, 인도 악기 도입, 솔로 활동, 방글라데시 난민 구호 콘서트 개최, 영화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 잉글랜드의 블루스 기타 연주자 - 에릭 클랩튼
    에릭 클랩튼은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 가수, 작곡가로, 여러 밴드 활동과 솔로 활동을 통해 블루스 록을 선도하며 "슬로우핸드"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독보적인 기타 연주 실력을 자랑하지만, 인종차별적 발언 논란과 마약 중독을 겪기도 했으며, 현재는 중독자 재활을 지원하는 자선 활동을 하고 있다.
  • 영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 마이클 케인
    마이클 케인 경은 1950년대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줄루》, 《알피》 등의 영화로 이름을 알렸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잉글랜드의 배우로, 2023년 은퇴를 선언했다.
  • 영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 윌리엄 스피크먼
    윌리엄 스피크먼은 한국 전쟁 마량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영국 육군 병사로, 탄약 부족 상황에서 맥주병까지 활용해 싸워 '맥주병 VC'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훈장을 기증하고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었다.
  • 체셔주 출신 - 글렌다 잭슨
    글렌다 잭슨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2회, 에미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영국의 배우이자,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및 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정치인이기도 하며, 정계 은퇴 후에는 토니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복귀했다.
  • 체셔주 출신 - 팀 헌트
    영국의 생화학자 팀 헌트는 세포 주기 조절에 중요한 사이클린을 발견한 공로로 200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으나, 2015년 성차별적 발언 논란으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명예 교수직을 사임했다.
존 메이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메이올 (1968년)
이름존 메이올
본명존 브럼웰 메이올
출생일1933년 11월 29일
출생지잉글랜드 체셔주 매클즈필드
사망일2024년 7월 22일
사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활동 기간1956년–2024년
국적영국
직업음악가
작곡가
프로듀서
악기보컬
키보드
기타
하모니카
장르브리티시 블루스
블루스 록
재즈 록
레이블데카 레코드
런던 레코드
DJM 레코드
ABC 레코드
이글 레코드
스내퍼 뮤직
폴리도르
실버톤
GNP 크레센도
관련 활동존 메이올 & 더 블루스브레이커스
캔드 히트
크림
플리트우드 맥
키프 하틀리 밴드
마크=알몬드
웹사이트johnmayall.com
수상
훈장대영 제국 훈장

2. 초기 생애 및 교육

존 브럼웰 메이올[3]은 1933년 11월 29일 체셔주 맥클즈필드에서 태어났으며[1][2] 치들 헐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머레이 메이올은 지역 술집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기타리스트였다.[4]

어린 시절부터 리드 벨리, 앨버트 애먼스, 파인탑 스미스, 에디 랭 등 미국 블루스 연주자들의 음악에 매료되어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연주를 독학했다.[5]

3. 경력

존 메이올은 체셔주 출신으로,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블루스 음악을 들으며 악기를 익혔다.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선구자인 알렉시스 코너의 영향을 받아 1962년에 블루스브레이커스를 결성한다.[56]

1965년 야드버즈를 탈퇴한 에릭 클랩튼이 블루스브레이커스에 합류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블루스록과 함께 메이올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클랩튼이 떠난 후에도 피터 그린, 믹 테일러, 하비 맨델 등 여러 기타리스트들이 블루스브레이커스를 거쳐갔다.[12] 이들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각자의 길을 걸으며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이유로 존 메이올은 '존 메이올 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잭 브루스, 앤디 프레이저(후에 프리 결성), 존 맥비(후에 플릿우드 맥 결성), 래리 테일러[57](후에 캔드 히트 결성) 같은 베이시스트들과, 키프 하틀리, 에인즐리 덤바(후에 마더스 오브 인벤션, 저니, 화이트스네이크 등에서 활동), 믹 플릿우드(후에 플릿우드 맥 결성), 존 하이즈먼(후에 콜로세움 결성), 콜린 앨런(후에 스톤 더 크로우즈, 포커스 등에서 활동) 같은 드러머들도 블루스브레이커스를 거쳐갔다.[56]

2005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OBE)을 받았다. 2000년대에도 꾸준히 신작을 발표했으며, 2008년에도 활발하게 라이브 활동을 했다.

아들 게즈 메이올[58]은 영국을 대표하는 스카, 레게 밴드인 더 트로잔스(The Trojans)[59]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게즈는 일본어를 잘해 일상 회화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2024년 7월 22일,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사망[60][61]했다. 향년 90세. 다음 날 23일(한국 시간 24일) 페이스북 등 공식 SNS를 통해 발표되었다.[62]

3. 1. 뮤지션으로서의 시작

메이올은 병역의 일환으로 한국에 파병되었고,[6] 휴가 기간 중 일본에서 첫 전기 기타를 구입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맨체스터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세미 프로 밴드인 파워하우스 포(Powerhouse Four)에서 연주를 시작했다.[6] 졸업 후에는 미술 디자이너로 취직했지만 지역 음악가들과 계속 연주를 이어갔다. 1963년에는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런던으로 이주했다.[6] 그의 이전 직업은 이후 그가 발매하는 많은 앨범의 표지 디자인에 유용하게 쓰였다.[6]

체셔주 출신으로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블루스에 친숙해지며 악기를 익혔다. 1956년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선구자인 알렉시스 코너의 영향을 받아 1962년에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를 결성한다.

3. 2. 1960년대 초반

1956년, 존 메이올은 대학 동기인 피터 워드와 함께 파워하우스 포(Powerhouse Four)를 결성했다. 이 밴드는 지역 음악가들과 함께 지역 무도회에서 연주했다.[6] 1962년 메이올은 블루스 신디케이트(Blues Syndicate)에 합류했다.[6] 이 밴드는 트럼펫 연주자 존 로울랜드와 알토 색소폰 연주자 잭 마사릭이 맨체스터 클럽에서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 밴드의 공연을 보고 재즈와 블루스를 결합한 음악을 시도하고자 결성했으며, 리듬 기타리스트 레이 커밍스와 메이올이 알고 지내던 휴기 플린트(Hughie Flint)가 드러머로 참여했다. 1962년 존과 그의 밴드는 맨체스터 중심부의 트위스티드 휠(Twisted Wheel) 지하 클럽에서 열리는 올나잇 R&B 세션에서 자주 공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는 메이올에게 전업 음악가의 길을 걷고 런던으로 이주할 것을 권유했고, 코너는 그에게 많은 다른 음악가들을 소개하고 공연을 찾도록 도왔다.[9]

1963년 후반,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로 이름을 바꾼 그의 밴드는 마키 클럽(Marquee Club)에서 공연을 시작했다.[6] 멤버는 메이올, 워드, 베이스의 존 맥비(John McVie), 시릴 데이비스(Cyril Davies)와 R&B 올스타(R&B All-Stars) 출신의 기타리스트 버니 왓슨이었다. 이듬해 봄, 메이올은 프로듀서 이언 샘웰(Ian Samwell)과 첫 녹음을 했다. 마틴 하트가 드럼을 맡은 밴드는 "크롤링 업 어 힐(Crawling Up a Hill)"과 "미스터 제임스(Mr. James)" 두 곡을 녹음했다.[7] 얼마 후, 휴기 플린트가 하트를 대신했고 로저 딘이 버니 왓슨으로부터 기타를 이어받았다. 이 라인업은 1964년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의 영국 투어에서 백업 밴드 역할을 했다.[8]

메이올은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로부터 녹음 계약 제안을 받았고, 1964년 12월 7일, 클룩스 클릭(Klooks Kleek)에서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녹음했다. 후에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싱글 "크로커다일 워크(Crocodile Walk)"와 함께 앨범이 발매되었지만, 두 작품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계약은 해지되었다.[9]

1965년 4월, 전 야드버즈(Yardbirds)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로저 딘을 대신했고, 존 메이올의 커리어는 결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10]

3. 3. 1960년대 중반 ~ 1971년

에릭 클랩튼야드버즈를 탈퇴하고 1965년 블루스브레이커스에 합류하면서, 블루스록 유행과 함께 메이올도 이름을 알렸다.[11] 클랩튼은 잠시 밴드를 떠났다가 1965년 11월에 복귀했다.[13] 1966년 4월, 블루스브레이커스는 블루스 브레이커스 위드 에릭 클랩튼을 녹음하여 1966년 7월에 발매했다.[6] 이 앨범은 영국 차트 6위까지 오르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6]

클랩튼 탈퇴 후, 피터 그린, 믹 테일러, 하비 맨델 등 여러 기타리스트들이 블루스브레이커스를 거쳐갔다.[12] 이들은 메이올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각자의 길을 걸으며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이유로 존 메이올은 '존 메이올 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잭 브루스, 앤디 프레이저, 존 맥비, 래리 테일러 같은 베이시스트들과, 키프 하틀리, 에인즐리 덤바, 믹 플릿우드, 존 하이즈먼, 콜린 앨런 같은 드러머들도 블루스브레이커스를 거쳐갔다.[56][57]

1969년, 메이올은 존 마크(Jon Mark)와 조니 알몬드(Johnny Almond)를 영입하여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27] 1970년에는 하비 맨델, 래리 테일러, 돈 "슈거케인" 해리스와 함께 새로운 밴드를 구성했다.[6]

3. 3. 1. 에릭 클랩튼 (1965-1966)

1965년, 에릭 클랩튼이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합류하면서 블루스브레이커스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밴드는 싱글 I'm Your Witchdoctor와 B면 "Telephone Blues"를 녹음했다.[11] 그러나 8월, 클랩튼은 '글랜즈(Glands)'라는 아마추어 그룹과 함께 그리스로 떠났다. 피터 그린이 기타리스트 자리를 맡았고, 잭 브루스가 베이스를 연주했다.[12]

1965년 11월, 클랩튼이 돌아오고 그린은 떠났다. 메이올이 클랩턴에게 언제든 돌아올 자리를 보장했기 때문이다.[13] 잭 브루스는 맨프레드 만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지만, 메이올-클랩턴-브루스-플린트 라인업의 라이브 공연이 런던 플라밍고 클럽 (The Flamingo Club)에서 녹음되었다. 이 녹음은 1969년 컴필레이션 앨범 ''Looking Back''과 1977년 ''Primal Solos''에 수록되었다.[14][15] 같은 라인업은 싱글 "On Top of the World"를 녹음했지만, 당시에는 발매되지 않았다.[16] 메이올과 클랩턴은 "Lonely Years"와 "Bernard Jenkins" 두 곡을 녹음하여 싱글로 발매했고, 이후 클랩턴의 크로스로드 박스 세트에 다시 수록되었다. 1965년 11월, 챔피언 잭 듀프리가 메이올과 클랩턴과 함께 몇 곡을 연주했다.[15]

1966년 4월, 블루스브레이커스는 두 번째 LP를 녹음했다. 블루스 브레이커스 위드 에릭 클랩턴은 1966년 7월 22일에 발매되었다.[6] 오티스 러시의 올 유어 러브, 프레디 킹의 하이드 어웨이 등의 커버곡과 메이올의 곡, 클랩턴의 램블린 온 마이 마인드 등이 수록되었다. 이 앨범은 영국 음반 차트 6위까지 오르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클랩턴의 기타 연주로 클래식 지위를 얻었다.[6]

6월 11일, 크림(클랩턴,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의 결성이 발표되었다. 클랩턴의 블루스브레이커스 마지막 공연은 7월 17일이었다.[19] 크림은 7월 29일 맨체스터에서 데뷔하고, 7월 31일 윈저에서 열린 제6회 전국 재즈 및 블루스 페스티벌에서 공식 라이브 데뷔를 했다.[20]

3. 3. 2. 피터 그린 (1966-1967)

메이올은 에릭 클랩튼을 대체하기 위해 피터 그린을 다시 영입했다. 그 후 1년 동안 그린은 기타를 맡고 여러 세션 뮤지션들과 함께 약 40곡을 녹음했다. 1967년 2월에는 힘든 길 (A Hard Road) 앨범이 발매되었다.[6] 1967년 초, 메이올은 미국의 리히터 튜닝 하모니카 연주자 폴 버터필드(Paul Butterfield)와 함께 녹음한 EP를 발매했다.[21]

하지만 피터 그린은 곧 그만두고 자신의 프로젝트인 피터 그린의 플릿우드 맥 (Fleetwood Mac)을 시작했는데, 이 밴드에는 결국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 멤버 3명, 즉 그린, 존 맥비, 그리고 몇 주 동안만 블루스브레이커스의 멤버였던 드러머 믹 플릿우드가 참여하게 되었다.[22] 이 라인업으로 구성된 라이브 앨범 《1967 라이브(Live in 1967)》 1집과 2집은 2015년과 2016년 포티 빌로우 레코드(Forty Below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23]

3. 3. 3. 믹 테일러 (1967-1969)

메이올이 그린을 대체할 첫 번째 선택은 어택의 기타리스트였던 18세의 데이비드 오리스트였다. 그러나 오리스트는 거절하고 오르가니스트 키스 에머슨과 함께 나이스를 결성했다. 1967년 6월 10일 《멜로디 메이커》에 게재된 "뮤지션 모집" 광고와 자신의 수색을 통해 메이올은 테리 에드먼즈, 존 무어스헤드, 그리고 18세의 믹 테일러라는 세 명의 다른 잠재적인 기타리스트를 블루스브레이커스를 위해 찾았다. 믹 테일러가 빨리 밴드에 합류했지만, 메이올은 며칠 동안 리듬 기타리스트로 에드먼즈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24]

1967년 5월 단 하루 만에 메이올은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었다. 전 아트우즈 드러머 키프 하틀리는 트랙의 절반에만 참여했고, 나머지는 모두 메이올이 연주했다. 이 앨범은 11월에 《블루스 얼론》(The Blues Alone)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6]

메이올, 리드 기타리스트 믹 테일러, 베이스의 존 맥비, 드럼의 휴기 플린트 또는 하틀리, 그리고 색소폰의 립 칸트와 크리스 머서로 구성된 6인조 라인업은 1967년 7월 11일과 12일에 《크루세이드》(Crusade) 앨범을 녹음했다.[6] 이 블루스브레이커스는 그 해 대부분을 해외 투어에 보냈고, 메이올은 휴대용 레코더로 공연을 녹음했다. 투어가 끝날 무렵 그는 60시간이 넘는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편집하여 두 권으로 된 앨범인 《다이어리 오브 어 밴드, 1&2권》(Diary of a Band, Vols. 1 & 2)을 만들어 1968년 2월에 발매했다.[6] 한편 몇 가지 라인업 변경이 있었다. 맥비가 떠나고 폴 윌리엄스가 그를 대체했지만, 윌리엄스도 곧 앨런 프라이스에 합류하기 위해 그만두었고 키스 틸먼이 그를 대체했다. 딕 헥스톨-스미스가 색소폰 자리를 차지했다.[25]

미국 투어 이후, 베이스 포지션을 시작으로 더 많은 라인업 변경이 있었다. 먼저 메이올은 베이시스트 틸먼을 15세의 앤디 프레이저로 교체했다. 그러나 6주 만에 프레이저는 프리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고, 이전에 뉴 재즈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토니 리브스가 그를 대체했다. 하틀리는 떠나야 했고, 그레이엄 본드 오가니제이션에서도 연주했던 뉴 재즈 오케스트라 드러머 존 히즈먼이 그를 대체했다. 바이올린과 코넷을 연주한 헨리 로우서가 1968년 2월 합류했다. 두 달 후 블루스브레이커스는 메이올과 마이크 버논이 공동 제작한 《베어 와이어즈》(Bare Wires)를 녹음했고, 이 앨범은 영국 차트 6위에 올랐다.[6]

히즈먼, 리브스, 헥스톨-스미스는 이후 콜로세움을 결성했다. 메이올 라인업은 믹 테일러를 유지하고 드러머 콜린 앨런(주트 머니스 빅 롤 밴드/단탈리안스 챠리엇, 조지 페이므 출신)과 스티븐 톰슨이라는 젊은 베이시스트를 추가했다. 1968년 8월 새로운 쿼텟은 《블루스 프롬 로럴 캐년》(Blues from Laurel Canyon)을 녹음했다.[6]

1969년 6월 13일, 메이올과 함께 거의 2년을 보낸 후 테일러는 떠나 롤링 스톤스에 합류했다.[6]

3. 3. 4. 마크-알몬드 시기 (1969-1970)

메이올은 볼륨을 낮추고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며 드러머 없이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그는 어쿠스틱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자 존 마크(Jon Mark)와 플루트 및 색소폰 연주자 조니 알몬드(Johnny Almond)를 영입했다.[27] 마크는 3년 동안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의 반주자로, 그리고 스윗 서즈데이(Sweet Thursday (band)) 밴드 멤버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이 밴드에는 피아니스트 니키 홉킨스(Nicky Hopkins)와 미래의 캣 스티븐스(Cat Stevens) 협력자 앨런 데이비스(Alun Davies (guitarist))(기타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몬드는 줏 머니(Zoot Money)와 앨런 프라이스(Alan Price)와 함께 연주했고 메이올의 음악에도 익숙했다. 그는 ''에릭 클랩튼과 함께하는 블루스 브레이커스(Blues Breakers with Eric Clapton)''의 네 곡과 ''하드 로드(A Hard Road)''의 일부에서 바리톤 색소폰을 연주했다.[27] 이 새로운 밴드는 이전 메이올 프로젝트와는 현저히 달랐으며, 그 제작 과정은 1999년 더블 CD ''더 마스터스(The Masters)''와 2004년 DVD ''브리티시 블루스의 대부/터닝 포인트(The Godfather of British Blues/The Turning Point)''에 잘 기록되어 있다.[28]

사운드의 큰 변화와 함께 메이올은 환경의 큰 변화, 즉 로스앤젤레스로의 이주를 결정했다. 새로운 밴드는 7월 5일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wport Jazz Festival)에서 미국 데뷔 무대를 가졌고,[24] 7월 12일 필모어 이스트(Fillmore East) 공연은 라이브 앨범 ''터닝 포인트(The Turning Point)''의 트랙을 제공했다.[6] 같은 멤버들과 함께 스튜디오 앨범 ''엠프티 룸스(Empty Rooms)''가 녹음되었는데, 메이올의 다음 베이시스트이자 전 캔드 히트(Canned Heat) 멤버인 래리 테일러(Larry Taylor)가 "투 어 프린세스(To a Princess)"에서 톰슨과 함께 베이스를 연주했다.[6]

3. 3. 5. 하비 맨델 (1970-1971)

존 메이올은 캔드 히트(Canned Heat)에서 영입한 기타리스트 하비 맨델(Harvey Mandel)과 베이시스트 래리 테일러(Larry Taylor), 그리고 조니 오티스(Johnny Otis) 쇼 출신이자 이전에는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The Mothers of Invention)에서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돈 "슈거케인" 해리스(Don "Sugarcane" Harris)를 포함한 새로운 일렉트릭 블루스-록-R&B 밴드를 구성했다.[6] 1970년 7월 27일과 28일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된 ''USA 유니온(USA Union)''에서 맨델은 서스테인(sustain)과 피드백(feedback)을 음악적 기법으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메모리스(Memories)''에서는 밴드가 테일러와 벤처스(The Ventures)의 기타리스트 제리 맥기(Gerry McGee)와 함께 트리오로 축소되었다.[6]

3. 4. 1970년대

1970년대 초, 메이올은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이후 15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여러 레이블을 통해 현지 음악가들과 녹음 작업을 했다. 1971년 8월, 메이올은 블루스 음악가 알버트 킹(Albert King)을 위해 재즈 지향적인 세션을 제작했고, 몇 달 후 스튜디오에 있던 음악가들과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30]

이듬해 라이브 앨범 ''재즈 블루스 퓨전(Jazz Blues Fusion)''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 메이올은 하모니카, 기타, 피아노를 연주했고, 블루 미첼(Blue Mitchell)은 트럼펫, 클리포드 솔로몬과 어니 왓츠(Ernie Watts)는 색소폰, 래리 테일러는 베이스, 론 셀리코는 드럼, 프레디 로빈슨(Freddy Robinson)은 기타를 연주했다. 1973년에 발매된 비슷한 라이브 앨범 ''무빙 온(Moving On)''에서는 몇몇 멤버 변경이 있었다.[31]

1974년 메이올은 톰 윌슨이 폴리도어(Polydor) 레이블을 위해 제작한 ''최신 에디션(The Latest Edition)''을 녹음했다.[32] 이 그룹에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 레드 홀로웨이(Red Holloway), 드러머 소코 리처드슨(Soko Richardson), 베이시스트 래리 테일러(Larry Taylor), 그리고 두 명의 기타리스트인 랜디 레즈닉(Randy Resnick)과 하이타이드 해리스가 참여했다. 이 밴드는 그해 유럽과 아시아를 순회 공연했다.

이후 10년 동안 메이올은 계속해서 음악가를 바꾸고 레이블을 바꾸면서 수많은 앨범을 발매했다. 톰 윌슨, 돈 닉스(Don Nix), 앨런 투생(Allen Toussaint)이 가끔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 시기 그의 음악은 대부분 록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일렉트릭 블루스와는 상당히 달랐으며, 재즈, 펑크 또는 팝 요소를 통합하고 여성 보컬을 추가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예외는 ''영국 블루스의 마지막(The Last of the British Blues)''(1978)인데, 이는 라이브 앨범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유형의 음악으로 잠시 복귀했음을 보여준다.[33]

3. 5. 블루스브레이커스의 귀환

1982년, 메이올은 믹 테일러, 존 맥비, 콜린 앨런과 재결합하여 2년간 세계 투어를 진행했고, 그 투어 실황 앨범은 10년 후에 발매되었다.[34]

1980년대 초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공연에서 블루스브레이커스에 복귀한 믹 테일러


1984년, 메이올은 월터 트라우트와 코코 몬토야라는 두 명의 리드 기타, 베이시스트 바비 헤인즈, 드러머 조 유엘로 구성된 라인업으로 블루스브레이커스라는 이름을 부활시켰다. 1990년대 초, 대부분의 열기는 이미 사라졌고 버디 휘팅턴이 당시 오르가니스트 톰 캐닝을 포함한 편성에서 유일한 리드 기타리스트가 되었다.[6]

3. 6. 2000년대

2001년, 메이올은 40주년을 기념하여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기념 앨범 "Along for the Ride"를 녹음했다. 이 앨범은 존 메이올 앤 프렌즈(John Mayall and Friends) 명의로 발매되었으며, Gary Moore, Jonny Lang, Steve Cropper, Steve Miller, Otis Rush, Billy Gibbons, 그렉 르자브(Greg Rzab), Chris Rea, Jeff Healey, Shannon Curfman 등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 출신 멤버들을 포함한 20명의 이름이 표지에 나열되었다.[35]

2003년 7월 19일,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메이올은 Liverpool Arena에서 열린 "유니세프를 위한 연합"(Unite for UNICEF) 자선 콘서트에서 Eric Clapton, Mick Taylor, Chris Barber 등 특별 게스트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DVD로 발매되었다.[36]

2008년 11월, 메이올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 해산을 발표했다. 이는 업무량을 줄이고 다른 음악가들과 자유롭게 작업하기 위함이었다. 2009년에는 기타에 로키 아서스(Rocky Athas), 베이스에 그렉 르자브(Greg Rzab), 드럼에 제이 데이븐포트(Jay Davenport), 오르간에 톰 캐닝(Tom Canning)으로 구성된 새로운 밴드와 함께 솔로 월드 투어를 진행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37]

3. 7. Forty Below Records 시기

2013년, 메이올은 프로듀서 에릭 코른의 레이블인 포티 빌로우 레코드와 계약했다. 두 사람은 함께 C. J. 체니어가 참여한 ''A Special Life'', ''Find a Way to Care'', 조 월시가 참여한 ''Talk About That'', 그리고 ''Nobody Told Me''까지 네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제작했다. 코른은 또한 피터 그린, 존 맥비, 믹 플리트우드가 참여한 1967년 라이브 녹음을 재마스터링하여 3개의 볼륨으로 구성된 ''Live in 1967''을 발매했다. 2016년, 메이올은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50]

4. 개인적인 삶

메이올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간제로 거주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 초에는 미국에 정착했다. 1979년 로럴 캐니언에 있는 그의 집이 산불로 소실되어, 2,000시간 분량의 비디오테이프 영화, 16세기 골동품, 1800년대부터 수집한 포르노그래피 자료, 그리고 25년 동안 써 온 일기장을 잃었다.[41]

메이올은 두 번 결혼하여 여섯 명의 자녀와 여섯 명의 손주를 두었다. 그의 두 번째 부인 매기 메이올은 미국의 블루스 음악가이며, 1980년대 초부터 남편의 경력 관리에 참여했다. 그들은 1982년 결혼했고,[42] 2011년 이혼했다.[43][44]

아들 게즈 메이올[58]은 영국을 대표하는 스카, 레게 밴드인 더 트로잔스(The Trojans)[59]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게즈는 일본어 이해력이 높아 일상 회화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본통이다.

2024년 7월 22일,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3][45][46]

5. 사망

메이올은 2024년 7월 22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5][46][3] 다음 날 23일(한국 시간 24일) 페이스북 등 공식 SNS를 통해 발표되었다.[62]

6. 서훈

2005년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을 수훈받았다.[63]

7. 음반 목록

존 메이올의 음반 목록은 존 메이올 음반 목록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1. 스튜디오 음반


  • Blues Breakers with Eric Clapton(1966)
  • A Hard Road(1967)
  • Crusade(1967)
  • The Blues Alone(1967)
  • Bare Wires(1968)
  • Blues from Laurel Canyon(1968)
  • The Turning Point(1969)
  • Empty Rooms(1970)
  • USA Union(1970)
  • Back to the Roots(1971)
  • Memories(1971)
  • Jazz Blues Fusion(1972)
  • Moving On(1972)
  • Ten Years Are Gone(1973)
  • The Latest Edition(1974)
  • New Year, New Band, New Company(1975)
  • Notice to Appear(1975)
  • A Banquet in Blues(1976)
  • A Hard Core Package(1977)
  • Bottom Line(1979)
  • No More Interviews(1980)
  • Road Show Blues(1981)
  • Return of the Bluesbreakers(1985)
  • Chicago Line(1988)
  • A Sense of Place(1990)
  • Cross Country Blues(1992)
  • Wake Up Call(1993)
  • Spinning Coin(1995)
  • Blues for the Lost Days(1997)
  • Padlock on the Blues(1999)
  • Along for the Ride(2001)
  • Stories(2002)
  • Road Dogs(2005)
  • In the Palace of the King(2007)
  • Tough(2009)
  • Big Man Blues(Recorded 1980's)(2012)
  • A Special Life(2014)
  • Find a Way to Care(2015)
  • Talk About That(2017)
  • Nobody Told Me(2019)

녹음 및 발매 정보는 ISRC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십시오.[54]

참조

[1] 뉴스 UPI Almanac for Friday, Nov. 29, 2019 https://www.upi.com/[...] United Press International 2019-11-29
[2] 웹사이트 Pride of Manchester's guide to John Mayall http://www.prideofma[...]
[3] 뉴스 John Mayall obituary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24-07-24
[4] 웹사이트 John Mayall, Pioneer of British Blues, Is Dead at 90 https://www.nytimes.[...] 2024-07-23
[5] 웹사이트 Biography http://www.johnmayal[...]
[6] 서적 The Guinness Who's Who of Blues Guinness Publishing 1995
[7] 서적 NME Rock 'N' Roll Years Reed International Books Ltd
[8] 웹사이트 Watch John Lee Hooker conjure up absolute magic on TV in 1964... with The Groundhogs https://www.louderso[...] 2022-03-23
[9] 웹사이트 John Mayall's Bluesbreakers with Eric Clapton: The Making of 'the Beano album' https://www.louderso[...] 2018-05-04
[10] 서적 Blues-rock Explosion Old Goat
[11] 문서 Clapton is God
[12] 웹사이트 Understanding John Mayall and the Bluesbreakers: A Deep Dive https://guitardoor.c[...] 2023-09-17
[13] 서적 The Eric Clapton Scrapbook Citadel Press
[14] 서적 The Eric Clapton Scrapbook
[15] 서적 Strange Brew: Eric Clapton & the British Blues Boom, 1965–1970 https://archive.org/[...] Jawbone Press
[16] 서적 Strange Brew: Eric Clapton & the British Blues Boom, 1965–1970 https://archive.org/[...] Jawbone Press
[17] 서적 Clapton: The Autobiography Broadway Books
[18] 간행물 Beat Instrumental 1966-09
[19] 서적 Strange Brew: Eric Clapton & the British Blues Boom, 1965–1970 https://archive.org/[...] Jawbone Press
[20] 비디오 Cream: Classic Artists Image Entertainment 2007
[21] CD 부클릿 A Hard Road (expanded edition) Deram Records
[22] 뉴스 How John Mayall changed the course of rock history https://www.telegrap[...]
[23] 웹사이트 Third Volume of the "Live In 1967" Series Available Now From John Mayall https://www.johnmaya[...] 2023-07-16
[24] 서적 Strange Brew : Eric Clapton and The British Blues Boom 1965–1970 https://archive.org/[...] Jawbone
[25] 서적 The Virgin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Virgin Books 1997
[26] 서적 The Virgin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Virgin Books 1997
[27] 서적 The Guinness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Guinness Publishing 1992
[28] 웹사이트 John Mayall: John Mayall: The Godfather Of British Blues/The Turning Point https://www.allabout[...] 2004-09-23
[29] 서적 The Complete Rock Family Trees Omnibus Press
[30] 문서 The Lost Session
[31] 서적 Christgau's Record Guide: Rock Albums of the Seventies Ticknor & Fields
[32] 웹사이트 The latest Edition https://www.discogs.[...]
[33] 문서 The Bottom Line
[34] 웹사이트 The 1982 Reunion Concert – John Mayall, 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 https://www.allmusic[...]
[35] 웹사이트 Along for the Ride – John Mayall https://www.allmusic[...]
[36] 음반
[37] 웹사이트 Biography http://www.johnmayal[...] John Mayall 2011-12-30
[38] 서적 John Mayall: The Blues Crusader https://books.google[...] Edition Olms
[39] 웹사이트 John Welcomes Carolyn Wonderland to the Band https://www.johnmaya[...] 2018-08-16
[40] 서적 Blues from Laurel Canyon: John Mayall: My Life as a Bluesman Omnibus Press 2019-10-31
[41] 웹사이트 FIRE IN LAUREL CANYON, Los Angeles Herald Examiner, Monday September 24, 1979 https://www.lafire.c[...] 2024-07-24
[42] 데이터베이스 England & Wales, Civil Registration Marriage Index, 1916–2005 Ancestry.com Operations, Inc 2010
[43] 인터뷰 Maggie Mayall: No Limit Blues http://blues.gr/prof[...] Blues.Gr 2012-05-19
[44] 블로그 The Divorce Diaries http://maggiesburnin[...] 2011-12-07
[45] 인스타그램 It is with heavy hearts that we bear the news that John Mayall passed away peacefully in his California home yesterday, July 22, 2024, surrounded by his loving family. 2024-07-23
[46] 잡지 Blues Legend John Mayall Is Dead at 90 https://www.vanityfa[...] 2024-07-24
[47] 웹사이트 Bluesmaster John Mayall Rocks NYC https://www.huffingt[...] 2013-02-12
[48] 뉴스 British royal honor pleases John Mayall https://www.upi.com/[...] UPI 2005-06-29
[49] 뉴스 Queen's List Honors For Ure, May, Page https://www.billboar[...] Billboard 2005-06-13
[50] 웹사이트 2024 Rock and Roll Hall of Fame inductees https://rockhall.com[...] 2024-04-22
[51] 잡지 Cher, Ozzy Osbourne, Dave Matthews Band, Mary J. Blige Lead Rock and Roll Hall of Fame 2024 Class https://www.rollings[...]
[52] 웹사이트 John Mayall, British Blues-Rock Legend and 2024 Rock and Roll Hall of Fame Inductee, Dies at 90 https://variety.com/[...] 2024-07-23
[53] 웹사이트 The Band https://www.johnmaya[...] John Mayall
[54] 웹사이트 ISRC Search https://isrcsearch.i[...] International Federation of the Phonographic Industry
[55] 문서 ジョン・メイヨール/ジョン・メヨール
[56] 서적 ブリティッシュ・ハード・ロック シンコーミュージック・エンタテイメント
[57] 문서 メル・テイラー
[58] 웹사이트 Discogs https://www.discogs.[...] 2024-07-29
[59] 웹사이트 Discogs https://www.discogs.[...] 2024-07-24
[60] 뉴스 John Mayall, British Blues-Rock Legend and 2024 Rock and Roll Hall of Fame Inductee, Dies at 90 https://variety.com/[...] 2024-07-23
[61] 뉴스 “ブリティッシュ・ブルースのゴッドファーザー”ジョン・メイオールさん90歳で死去 https://www.nikkansp[...] 2024-07-24
[62] 웹사이트 “ブリティッシュ・ブルースのゴッドファーザー”ジョン・メイオールさん90歳で死去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4-07-24
[63] 저널 Supplement No. 1: Birthday Honours List - United Kingdom https://www.thegazet[...] 2017-03-1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